남겨진 흔적
벽은 건축에 있어서 공간을 구획하고 경계 짓는 역할을 한다. 벽은 외부로부터의 차단과 보호라는 부정과 긍정의 이중적 역할로, 벽에 의한 공간은 가족과 타 집단의 관계갈등에 대한 표현이었으며 벽이 갖는 이중성은 갈등 안에서의 침묵의 역할을 대신한다. 침묵은 소통에 대한 외면과 동시에 방어의 수단이다. 이는 아무런 통로나 출입구 없이 벽돌들로 막혀진 공간과 건물 이미지로 환원되어 반영된다.
“남겨진 흔적” 전시의 작업들에서는 벽돌들로 채워지거나 비워진 사각의 면, 벽돌이 빠지고 남은 얇은 시멘트 구조물, 벽면을 뒤덮은 녹색 면 뒤쪽에 새겨진 벽돌들의 자국들, 실재했던 집의 영역을 나타내는 점선들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흔적의 형상들을 보여준다. 또한 깨진 유리 조각이나 칼날과 같은 물성을 통해 ‘위험·접근금지’의 언급과 같은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내면의 상태를 암시한다.
내게 흔적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표시나 자국들, 또는 존재했던 것의 증거로서 남아있는 일부분처럼 실체적인 것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집을 중심으로 관계 맺어진 관계 내에서 벌어지는 충돌의 지점에서 겪었던 여러 층의 감정이나 갈등과 관련되어진 것, 폐쇄적 태도나 막연한 불안과 염려 같은, 무뎌질 수 있지만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내면의 상태나 기억까지 남겨진 흔적에 포함된다.
집과 벽은 이러한 추상적 흔적에 대한 나의 관념이 투사된 대상으로, 실제의 건축물이나 그것의 부분과 같은 구체적 형상으로 때론 육면체, 평면 등의 기하학적 도형과 같은 단순화된 형상으로 작업에 가시화된다.
-정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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